文化/읽고

한 개인의 기록으로 본 불안했던 시간들 '작은일기'

ajy1 2025. 7. 12. 13:20

편독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손이 잘 가지 않는 에세이의 서평 이벤트에 응모하여 받게 된 가제본 도서 『작은일기』

황정은 작가의 글은 처음 접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조용한 울림이 느껴지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에세이집은 교과서 속에서나 보던 12·3 계엄 선포와 해제, 그리고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의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매일의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던 한 개인의 감각과 생각, 사소하고도 절실했던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그려내고 있다.
믿기 어려운 여러 소식들이 연일 들려오는 와중에도 여전히 일을 하고, 매 끼니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했던 날들은 우리 모두가 견뎌내야 했던 시간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도 지나고 있는 시간일지도... 작가는 개인의 작은 일기 속에 그려진 여러 혼란의 시간에 대한 기억을 보여주었다. 역사의 현장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보았던 한 개인은 누군가의 일기 속 장면장면을 통해 그때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다시 한번 위로 받고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서평 이벤트로 받은 가제본 도서

 

작은 말들이 건네는 위로

말하는 것이 언제나 해방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하는 일이 때로는 왜 그토록 어렵고 무서운 일인지 자꾸 떠올리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했던 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순간. 말은 입에서 나오는 동시에 무력해지기도 한다. 그걸 작가는 정확히 알고 있었고, 나는 그걸 읽으며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p.41)
말할수록 말하고자 하는 것이 가벼워지고 하찮아지는 것 같았냐고 묻자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문한다. 나도 겪곤 하니까. 그 무서운 일을.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때론 단지 ‘말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경험임을 알고 있다. 개인의 고통이 타인에게는 가벼운 문제가 되는 순간, 말은 위로가 아니라 상처가 된다. 이 일기 속에서는 그 무력함을 말하는 동시에, 공감과 연대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아 작가의 따뜻한 관찰력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더불어 나도 모르게 타인의 무언가를 가벼이 대한 적은 없는지 반추하며 늘 주의해야 겠다는 생각을 살포시....

 

공감의 확장, 연대의 가능성

일로 만났던 누군가, 우연히 나간 모임에서 만난  누군가. 그때의 누군가들은 용기를 내 자신의 소수자성을 말했는데, 그걸 들은 나는 그 말을 받기에 너무 부족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정말 그랬다. 그런 말을, 그렇게 해준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였다. 그때의 나는 아직 많이 미숙했기에(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조금 더 서툴렀기에...) 상대에게 나도 모르는 불편감을 주진 않았을지 뒤늦게 우려가 되기도 했다. 혹은 그 이후에라도 내가 그들의 용기 낸 고백을 너무 무심히 넘긴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그래도 그런 경험이 쌓이며 때로는 감사했다. 나를 뭘 믿고 이리 용기 내어 말해주나 싶은 마음이었달까? 

 

작가도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작가가 만난 이들은 대중 앞에서 외쳤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도 같다.) 힘겨운 시간 속에서 그런 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던 작가 또한 위로받는 마음이 들었다니... 힘겨운 상황 속에서 각자가 가진 아픔과 힘겨움을 용기 내 드러내는 것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의 기반이 되어준다는 것, 수와 상관없이 공동체의 강한 공감과 지지가 있으면 어려울 때 일수록, 사람의 힘, 함께함의 위력을 느끼게 해주는 것을 작가도 느낀 것은 아닐까? 

(p.53)
이 무수한, 낯모르는 사람들의 뭘 믿고 자신의 소수자성을 말했을까. 듣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내가 뭐라고 이 용감한 말을 받나, 싶으면서도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내 옆에 앉은 사람들, 저 멀리에 앉은 사람들이 응원봉과 깃발을 흔들며 그의 말을 환영하고 있었다.

 

더불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흐름이 아니라, 돌봄의 윤리라는 것.

‘모른 척 하지 않는 마음’, ‘돌볼 줄 아는 태도’는 사회적 연대의 가장 기초적인 출발점이며, 개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가 곧 공동체의 건강성을 결정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했다.  단지 ‘나’의 경험만이 아니라, "곁에 있는 다른 여성, 사람의 삶"을 보고, 듣고, 배우는 과정 속에서 더욱 분명해지는 것. 나의 체험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그것을 공유하고 목격하면서 연대의식과 정치적 감각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p.58)
삶이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겪으며 살아왔고 바로 곁에 있는 다른 여성의 삶으로도 보고 듣고 배우며 살아오지 않았나.

 

또한, 우리 모두가 서로의 고통에 마음을 기울이고 돌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부드럽게 환기한다. 비록 종종 행동하지 못한 자의 죄책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내란 사태 동안 광장에서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의 빚이 내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작가는 그 상황에 함께 했지만 때로는 그러지 못하는, "잠깐이라도 다녀올까" 하는 마음과,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는 현실 사이의 간극은 많은 이들이 정치적 연대나 실천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두려움, 피로, 일상의 압박 등으로 인해 멈춰 서는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 같아 스스로를 투영하는 것 같은 위안을 받기도 했다. 이 또한 하나의 정치적 현실이겠지...

(p57) 남의 곤경과 고립을 모르는 척 내버려두거나 차마 두고 갈 수는 없는 마음들 아닐까. 남의 고통을 돌아보고, 서로 돌볼 줄 아는 마음들
(p86) 고맙고. 아직도 사람들이 남아 있는데 나는 이러고만 있다. 잠깐이라도 다녀올가, 했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

 

어떤 파괴적 행동이 단지 분노의 표출, 혹은 자기 존재의 확인이라는 목적이라면, 그것은 공적 목적이나 연대의 정치가 아닌, 일종의 개인적 마킹이 아닐까? ‘파괴’가 목적 없는 충동일 경우, 그것은 ‘저항’이라기보다 오히려 정치의 심연에 대한 무력한 외침에 가까울 수 있 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또 이렇게 역사의 현장에서  보고 배우게 되는 것 같다.

(p97) 내게는 정치적 입장의 표출이 아니고 어떤 욕구를 충족하려는 영역 표시로 보였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세상에 그 모습을 흩뿌리는 것 외에 목적이랄 게 없는 파괴들.

 

그 외의 글귀들...

때로는 공감하며, 때로는 산만하게 책을 읽어 나가며 누군가의 일기를 함께 본다는 것이 참 희한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며 순간순간에 와 닿는 문구들이 어떤 의미에서건 지금의 내게 끌림이 있는 것이겠지 싶은 마음에 간헐적으로 표시하며 하나, 둘 모아보았다. (산만해질 때 읽은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p138) 기운이 나지 않는다, 우울감이 심하다, 그런 말을 메시지로 적다가 겁이 나 지웠다. 그런 기분을 전염병처럼 퍼뜨리면 안 될 것 같았다.

(p108) '오염'이라는 말로 내 상처의 원인을 부드럽게 짚어주는 것 같았다. 말(헌법)의 오염. 바로 그것을 내가 견디기 어려웠다. 정확한 말이 건네는 위안을 받았다.

(p123) 그런 기억도 저런 기억도 새 원고를 시작할 때마다 잊는다. "나 소설 어떻게 썼지?"

(p138) 기운이 나지 않는다, 우울감이 심하다, 그런 말을 메시지로 적다가 겁이 나 지웠다. 그런 기분을 전염병처럼 퍼뜨리면 안 될 것 같았다.

(p139) 어리석음이 종종 늙음의 얼굴로 온다는 것은 기필코 늙는 존재인 내게도 섬뜩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어리석음이 마침내 늙음에서 개화했겠나, 인생 곳곳에 만발했을 것이다. 남의 인생을 이렇게 함부로 생각하며 앉아 있다. 시국이 이래서 헛소리하는 이들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있다.

 

『작은일기』는 조용하지만 무겁고, 때론 무력하지만 그럼에도 공감과 연대를 갈망하는 한 개인의 기록이다.
말의 무게와 위력, 침묵의 무서움, 그리고 그 안에서 자라나는 작은 희망과 연대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담아낸 책이다.

읽는 이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고, 곁에 함께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남기는 에세이집이었다.